8월. 읽은 뒤에



1. 길 위에서 / 이창재

 예상했던 것과는 약간 다른 책이었는데 예상했던 것 만큼 좋았던 신기한 책이다. <후회없이 살고 있나요>의 경우에는 책을 읽는 한 2/3은 계속 적든 많든 반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읽었기 때문에 이 책도 그렇지 않을까 했던 것만 빗나갔지, 책을 읽다 한숨을 내쉬는 횟수는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여러 에피소드가 등장하지만 그 중 세 스님이 여행길을 떠나는 에피소드 (기억이 잘 안나지만 선우 스님이 나왔던 에피소드였던 것 같다), 마지막에 나온 무문관에서 버텨줘서, 버티게해줘서 서로에게 고맙습니다 했던 부분도 좋았고. 깨달음을 얻으려고 속세의 인연을 다 끊고 수행의 길을 가는데 결국 인연으로 삶이 지탱된다는 점이 인상적. 책 초반에 소개된 서럽게 우는 비구니 스님의 눈물 소리에 속세에 두고온 님이 생각나서 우나보다-하는 시는 정말이지 속도 모르고 하는 얘기였다는 에피소드는 나도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아주 약간은 이해가 갔던 부분. 정말이지 속도 모르는 시인이다. 이 책은 불교의 교리나 설법을 담은 책은 아니라서, 불교라는 종교에 마인드 맵으로는 석가모니나 원효대사정도 밖에 채우지 못하는 나로서는 대체 이 '깨달음'이란 대체 무엇인가 하는 궁금함이 남는다. 그리고 불교도에게 부처님이란 어떤 존재인지. 분명 크리스트교나 이슬람의 신과는 완전히 다르다. 주변에 독실한 불교 신자가 있다면 물어보고 싶은게 많다. 단순히 교리 뿐만 아니라 불교 신앙이란건 일반적으로 어떤건지 궁금하다. <후회없이 살고 있나요>에 영화 <목숨>이 있듯 <길 위에서>에는 또 영화 <길 위에서>가 있다. 네이버에서 천원주고 다운로드가 되길래 냉큼 받았다. 주말에 이 영화나 봐야지.


2. 누군가 / 미야베 미유키

 그동안 봤던 미야베 미유키(그래봤자 <화차>, <이유>가 전부...)의 작품에 비해 많이 마일드하고, 그런 중에 리코라는 이질적인 인물이 등장했던 소설. 재미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막 재밌지도 않았다. 사실 이 책을 읽은 타이밍이 별로 이런 책을 읽고 싶지 않은 타이밍에 빨리 읽고 돌려줘야하는 일정이라서 실제로 그런 것 보다 더 재미없게 읽지 않았나 싶기도. 이 소설의 주인공을 메인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물이 있다던데, 그래서 인물에 대한 설명이 <화차>나 <이유>에 비해서 깊지 않았던 것도 같다. 앞으로 풀어갈 지면이 많이있으니까.



3. 이토록 달콤한 고통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애나벨을 좋아하는 데이비드, 데이비드를 좋아하는 에피, 에피를 좋아하는 웨스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이 중에서 제일 미친사람은 데이비드다.
 사실 처음에는 데이비드가 그 정도로 미친놈은 아니었다. 다만 상황이 진행될수록 데이비드가 최악의 선택만 골라서 하는 바람에 결국 자기를 의지할 곳 없는 빌딩위의 난간에까지 몰고 가버린 것.
 <이처럼 달콤한 고통>이라는 건 데이비드를 파멸에 몰고간 그 고통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에피를 그 지경으로 만든 고통이기도 하다. 저 맥락에서 웨스는 일찍 그 달콤함에서 발을 빼고 쓰디쓴 현실로 돌아가는 걸 택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50년대 사람이라 해도 애나벨의 데이비드에 대한 반응은 참 마음에 안들었다. 제럴드가 너무 불쌍할 따름. 
 데이비드가 뉴마이스터의 정체를 에피 앞에서 처음 까발리는 그 저택 장면은 백미. 사랑을 고백하는 에피에게 꺼지라고 응수하는 장면이나, 거의 정신착란의 지경에 이르러 생명보험 수혜자 이름을 바꾸러 한밤중에 비첨 부인을 찾아가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자신에 대한 에피의 애정과 가끔 소름끼치게 하는 집착에 넌더리를 내면서 애나벨에게 하는 짓을 생각해보면 이 남자가 얼마나 자기애로 똘똘 뭉쳐있나, 애나벨을 자기 인생에 데려와서 본인이 생각한 '완벽한' 삶을 만들어 내는 데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나, 현실에서 그것이 좌절되었다면 월급의 90퍼센트를 쏟아부어서라도 어떻게든 대체의 현실로까지라도 만들려고 얼마나 병적으로 애쓰는가. 이 모습을 몰랐던 애나벨은 데이비드의 '네가 없이 너와 천 번은 혼자 건배를 했다'는 대사에 진저리를 치기도 한다. 
 화자가 이미 결혼한 전 여친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병적인게 아니라 그냥 병이다....) 미친놈이라서 나로서는 감정이입이 어려울 것 같지만 굉장히 데이비드에 이입해서 읽었다. 남녀를 가릴 것 없이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이런 미친 부분이 일정 부분 존재하기 때문이겠다만, 그래도 이걸 끝까지 읽게 만드는 이 부분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능력이지 싶다.(하이스미스보다 덜 섬세한 사람이 썼다면 50페이지도 못보고 짜증나서 덮어버렸을 것).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정신줄을 놓아가다 못해 착란까지 일으키는 이 사람의 머리속을 이야기로서 끈질기게 따라갈 수 있었다는게 신기하다. 그걸 치밀하게 텍스트로 옮겨놓은 섬세함이 너무 좋았다. 이쯤 되면 영화 <캐롤>의 원작이 어땠는지 궁금해진다. 
 
 <길 위에서>를 빌리면서 또 다른 힐링의 목적으로 빌렸던 다른 두 책은 도저히 책 읽을 기운이 안나서 그대로 반납했다. <이토록 달콤한 고통>은 이번 주 신문기사 소개 글을 보고 낚여서(?) 읽었던 책이라 전반적으로 이번달엔 그닥 책을 안읽었던 것 같다. 8월이 워낙 더워서 그랬나. 아무튼 7월 말부터 여러모로 마음이 싱숭생숭하다가 8월 말쯤이 되서 다시 평정심이 돌아온 듯 하다.



 자, 다음 달 정산(?)을 위해 지금 읽고 있는/읽을지도 모를 책을 적어보면.

1. 파인만 씨, 농담도 잘 하시네! 1권 / 리처드 파인만
 지금 읽고 있는 책. 워낙 유명한 책이라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했는데, 도서관에서 2의 책을 찾다가 발견하는 바람에 집어들었다. 전권이 다 도서관이 있으니까 다 빌려봐야지ㅋㅋㅋㅋ

2. 일상적이지만 절대적인 양자역학 지식 50 / 조앤 베이커
 역시 지금 읽고 있는 책. 고등학생 때 물리를 좋아해서(당연히 잘한 건 아니다) 수능 선택 과목을 물리로 도배해버리는 미친 짓을 해버린 과거를 지닌 사람으로서, 이 책의 앞부분은 고등학생 때 배웠던 걸 새록새록 떠올리게 했었다. 대학에서도 일단은 공대에 진학했으니 물리를 배우긴 했었지만 한학기를 배운 수준이라 고등학생 때 했던 것의 실험 + 역학 쪽의 약간 새로운 내용 정도여서(토크나 기초적인 유체역학 같은 것) 고등학교 물리 수준을 벗어나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는데 물리를 좋아하면서 화학은 쥐약이었던 터라 광전 효과 같은 건 재밌게 보면서도 전자 껍질 같은거 나오기 시작하니까 화학 시간의 머리 아픔이 생각났던 거다.... 사실 다 이어지는 얘기인데. 차라리 화학2를 했으면 재밌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왠지 화학 1은 왠지 재미가 없었던 것 같다.

3. 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 / 폴 핼펀
 위의 두 책을 읽으면 읽게 될 책. 2의 책이 양자역학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현대 물리학의 통사를 훑는 책이라, 2를 읽은 뒤에 특정 시대를 다루는 이 책을 읽으면 좀 책을 따라가는게 덜 힘겹지 않을까 싶어서.

4.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 피터 갤리슨
 위의 세 권의 책을 빌리게된 원흉. 사실 이 책은 상대성 이론을 다루는 책일 것 같아서 위의 책들과는 약간 핀트가 엇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달에 못읽고 이월됐다.

이런 중에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엄청나게 쉽게 설명한 유튜브 채널을 발견. '사이언스 레벨업'이라는 유튜브 채널인데 무려 슈뢰딩거의 잔망스러움이 포인트다. 주소는 여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DQjoB00hSB7clgoul8S5rw



5. 심연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당연히 위의 <이토록 달콤한 고통>의 영향이지만, 사실 구입은 이 책을 먼저 했다는거. 왜 샀었지, 무슨 생각으로 샀었지 하는게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 샀는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달콤한 고통>과 <심연>을 펴낸 출판사 오픈하우스의 버티고 시리즈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작품이 몇 개 있던데 정작 <캐롤>이 이 시리즈가 아니더라. 장르가 달라서 그런가. 같은 시리즈여야 책장에 꽂아놓을때 보기가 좋은데 아쉽다. <심연>도 재미있다면 아마 이 시리즈는 한권한권 찾아보게될 것 같다.

6. 시대의 소음 / 줄리언 반스
 원래 이 책은 <길 위에서>의 다음 책으로 한참 재밌게 읽다가 책읽을 기운이 떨어져서 1/3 지점에 책갈피가 꽂힌채 책상 위에 놓여있는 책. 한가지 아쉬운게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러시아의 역사를 전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몰라서 책에서 상징적으로 적시되는 사건과 여러 표현들을 놓치고 지나가는게 많은 것 같다는 느낌에 아쉬움이 너무 들었다는거다. 4의 책을 읽으려고 다른 책을 읽어서 빙 돌아가는 것처럼 이 책에 대해서도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 일단 웹에서 갈무리 된 글들은 읽어보고 있다만.. 




 도서관 가서 보니까 자연 과학쪽 책이 정말 적었다. 앞으로 내가 많이 신청해야짘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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